‘대독(代讀)’. ‘대신 읽는다’는 말로 학교 때 상장(賞狀)께나 받아 본 독자들이라면 익숙할 용어다. 상 준다고 불러선 단하에 세워 놓고, 학업 등 공적(功績) 사항을 줄줄 읽은 다음 ‘누구누구 대독’이라고 한다.
교육 유관기관과 지역의 유지, 협·단체장들이 주는 상의 대개가 그런데, 생면부지의 사람이 주는 상을 넙죽(실제로 넙죽해야 단상까지 손이 닿는다), 그것도 ‘대독’으로 치하 받자니 마뜩찮아 하는 이들이 많았다.
상을 받을 때도 시원치 않을 판에, 사과를 대독으로 하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사과문이랍시고 종이 쪼가리 한 장 던져 놓으면 그만이니, 참 쉽다. 언론은 또 그걸 ‘공식 사과’라고 호들갑을 떨며 받아쓴다.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에 총대를 맺던 전경련의 허창수 회장은 지난달 29일 "전경련이 국민께 많은 실망과 걱정을 끼친 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국정농단 사태에 수개월을 침묵하던 그가 신년사를 겸해 발표한 사과문이다.
4만500여 ‘알바’들의 등을 친 이랜드그룹은 지난달 21일 “아르바이트 직원들에게 깊은 상처를 드렸던 점을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사과문을 냈다. 박성수 회장 명의가 아닌 이랜드그룹 임직원 일동. 그룹의 제 1 경영이념이 '나눔'이란다.
술집에서 난동을 부린 동국제강 장선익 이사도 최근 “어떤 변명을 해도 제 잘못이 분명하기에 진심으로 깊게 후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사측이 팩트가 틀린 내용을 언론에 흘려 장 이사를 비호하려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국민 앞에서 머리 숙이기는커녕 사과문을 국민들에게 ‘대독’하게 한 주요인사들이다. 국민들은 ‘대독 사과’가 아닌 ‘코빼기 사과’를 바란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었겠지만 기내에서 난동을 부린 한 중소기업 회장 아들의 경찰 ‘포토라인 사과’는 그래도 가슴 후련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