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나의 앨리스 이야기 #2
[연재칼럼] 나의 앨리스 이야기 #2
  • By김보람(pulanj@gmail.com)
  • 승인 2017.03.06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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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LG전자 UX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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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칼럼] 나의 앨리스이야기 #2 토끼굴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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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굴 속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앨리스가 토끼굴에 빠지면서 시작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빨간색 약과 파란색 약 중 하나를 선택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파란색 약을 선택하면 매트릭스의 세계 속에서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네오는 '진짜 현실'에 대한 호기심으로 빨간색 약을 선택한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영화 <매트릭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오마주 영화이며 '흰 토끼를 따라가라'는 암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패러디한 것이다[7]. 앨리스가 토끼굴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이상한 나라는 현대 시대를 관통하는 훌륭한 철학적 단초가 된다. 이 토끼굴 속 새로운 세계는 앨리스가 살고 있는 기존 세계와의 대립을 가져오며 이 두 세계관의 개념은 이후 현대 철학 사조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오마주하는 영화다.


플라톤 시뮬라르크
현대 철학 사조의 이해를 위해서는 먼저 플라톤의 시뮬라르크 Simulacre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플라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참세계'가 아니라, 진리의 원형인 이데아가 가득찬 참 세계를 복제한 세계로 보았다. 그리고 이데아의 복제물을 다시 또 복제한 것을 '시뮬라르크'라고 정의하였다. 복제물 Eikones들은 이데아를 흉내내고 있어 유사성을 담고 있지만 복제물을 복제한 시뮬라크르 Phantasmata는 위계 가치 상 가장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6].

그림자 놀이 , 철판 프로젝터 선풍기, 1986, Christian Boltanski and Galerie Marian Goodman, Paris/New York

위의 그림 속 불탕스키의 작품이 연출하는 상황처럼, 플라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저 천상에 있는 이데아 세계의 그림자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동굴의 비유에 따르면, 인간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동굴에 갇혀 이데아를 모사한 인공물을 동굴 벽에 비추며 그림자를 현실, 참된 실재로 착각하며 살아간다고 주장했다[1].

질 들뢰즈의 시뮬라르크
플라톤이 시뮬라르크를 무시한 것에 반해,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시뮬라르크가 세상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주목했다. 플라톤은 본질과 외관, 이데아와 그림자, 원본과 복사본, 모델과 시뮬라크르를 구분하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들뢰즈는 플라톤과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시뮬라크르를 옹호한다. 플라톤과 들뢰즈의 가장 큰 차이는 이데아에 대한 입장에서 비롯되는데 플라톤은 이데아를 가장 참된 것으로 간주하고 현실은 이데아의 복제이며, 시뮬라크르는 복제의 복제로 가장 가치 없는 것으로 보지만 들뢰즈는 애초에 이데아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원본과 시뮬라크르 간의 대조 자체가 무의미하게 된다. 시뮬라크르는 시뮬라크르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시뮬라크르는 어떤 절대적 기준에 의해 그 가치가 평가될 수 없다고 말한다[6].

영화 <인셉션>의 토템(위)과 게임 <모뉴먼트 벨리> 속 토템(아래)

들뢰즈는 현대에 들어오면서 시뮬라르크가 원형과 같아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원형을 뛰어넘어 새롭게 의미를 창출한다고 보았다[7]. 토템 Totem이라 불리는 상징물은 원래 원시사회에서 숭배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오면서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이 토템이라는 개념을 이용하면서 작가의 의도가 덧입혀져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은 이 시뮬라르크의 개념을 잘 보여준다. 주인공 돔 코브가 설계하고 창조한 꿈 속 새로운 가상 세계는 시뮬라르크이지만 돔 코브는 결국 이 가상세계를 더 사랑하게 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영화 속에서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구분시켜주는 도구로서 팽이 형태의 토템이 등장한다. 멈추지 않고 회전하는 팽이는 가상세계임을 보여주며 영화 마지막 순간에 등장하는 토템은 관객들에게 지금의 현실이 꿈일 수도 있다는 메세지를 전달하며 이 토템이 관객의 토템이 되었음을 암시한다.

게임 '모뉴먼트 밸리'에서도 토템이 등장하는데 이 토템은 주인공인 아이다가 시공간이 모호한 모뉴먼트 밸리를 여행하면서 위기의 순간 순간 아이다에게 길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같은 토템이라는 실재의 원형 재료를 활용했지만 창작자가 창작물에 맞게 부여한 의미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개념이 된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는 질 들뢰즈의 시뮬라르크에서 더 나아가 보다 적극적 의미의 시뮬라시용 Simulation이라는 개념을 정의하였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는 원본 없는 이미지 그 자체가 현실을 대체하고, 현실은 이미지에 지배받아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을 나타내는 '과다실제Hyper-reality'에 놓여있다고 보았다[7]. 보드리야르는 들뢰즈가 정립한 시뮬라르크에 바탕을 두고 동사적 의미인 '시뮬라르크를 하기'라는 뜻으로 '시뮬라시옹'이라는 단어를 정의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실체보다 기호가 더 본질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강조했다[7].

딸기맛 우유 속에는 딸기 대신 딸기색 색소가 들어있다. 스타벅스의 초록색 사이렌 로고는 어떤 취향을 상징한다.

딸기맛 우유 속에는 딸기 대신 딸기색 색소가 들어있다. 스타벅스의 초록색 사이렌 로고는 어떤 취향을 상징한다. 딸기맛 우유에는 딸기가 없고 대신 딸기 색을 낼 수 있는 연지벌레 추출물과 딸기 향만 있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딸기 맛 우유를 마시며 딸기를 떠올린다. 바나나맛 우유도 마찬가지로 바나나는 하얗지만 껍질이 가진 색상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노란색을 띈다[7]. 또 스타벅스는 커피의 입맛Taste을 하나의 미학적 취향Taste으로 바꾸어놓았는데 스타벅스의 등장으로 커피 잔에 프린트된 초록색 사이렌 로고는 그것을 소유한 이가 어떤 '취향 공동체'의 일원임을 의미하게 된다. 상품을 통해 특정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것을 장 보드리야르는 ‘파노플리 효과’라고 명명했다[8]. 시뮬라시옹의 세계에서는 허구 자체가 세계가 되고 허구로서의 커피, 서사로서의 커피가 오늘날에는 이미 에스프레소의 진한 액체만큼 진한 물질적 현실을 보여준다. 기표 Signifiant와 기의Signifié 의 의미는 사라지고 기호의 자의성이 강화되어 대중은 상품과 상품 사이의 '차이'를 소비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기호가치가 되어버렸다[8]. 사람들은 이제 미키마우스를 통해 쥐를 생각하게 되고 마블사가 만들어낸 히어로들과 그 세계관을 선봉하며 살아간다. 현대는 바야흐로 기존에 인류가 으레 갖고 있었던 의미생성의 논리가 전복된 시대이다.

참고문헌
[1] 진중권.『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휴머니스트, 2005.
[2] 이수진. "루이스 캐럴의 언어게임—앨리스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국근대영미소설학회』, 2005, 12(1), p. 97-118[
[3] 이지현. "루이스 캐럴의 그림책 ‘앨리스’ 시리즈의 상상력을 중심으로 살펴본 화문대구성 연구". 『한국디자인포럼』, 2008, 20, p. 307-316
[4] 진중권. "‘부조리의 세계’로 현실 뒤집다". 『주간동아』, 2005. 406호, p. 104-106 
[5] 류우야. "붉은 여왕 가설". 2016. <http://getitall.tistory.com/entry/%EB%B6%89%EC%9D%80-%EC%97%AC%EC%99%95-%EA%B0%80%EC%84%A4-Red-Queens-Hypothesis-%EC%9D%B4%EB%9E%80>
[6] 이우. "시뮬라크르(Simulacre)와 시뮬라시옹(simulation)". 2013. < http://www.epicurus.kr/mid=Humanitas&page=8&document_srl=339025>
[7] 이남석. 『앨리스의 이상한 인문학』. 옥당, 2015.
[8] 진중권·정재승.『크로스』. 웅진지식하우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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