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나의 앨리스이야기 #3
[연재칼럼] 나의 앨리스이야기 #3
  • By김보람(pulanj@gmail.com)
  • 승인 2017.03.07 0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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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LG전자 UX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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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의 철학, 말도 안되게 재미있는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외계어를 만들어서 그 외계어 단어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그 외계어를 기록하고 그 단어로 친구들과 대화를 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언어에 기 반영된 의미와 언어 간의 규칙들을 익히는 과정을 통해 어른 세계에서 통용되는 세상의 규칙들을 체화시켜 나간다. 그런데 어쩌면 이 사회화라는 과정이 아이 때의 그야말로 말이 안되는 놀이가 가진 상상력과 새로운 형태를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점점 잃어버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오든 W. H. Auden은 "이상한 나라와 거울나라에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캐릭터 중 하나는 사람이 아니라 언어"라고 말할 정도로 루이스 캐럴은 19세기 영국에서 유행하던 유머나 시에 패러디 기법을 적용하여 언어적 유희와 문학적 환상을 표현했다[2]. 또 언어 그 자체에 애너그램, 어크로스틱, 문답 등 다양한 언어적 기법을 활용하여 언어 자체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기존의 현실세계에서 규정되어 있던 언어 법칙과 의미들을 부수고 해체하여 언어의 넌센스를 통해 언어의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도록 한다[2].

앨리스는 두 나라의 모험을 통해서 "수동적인 대상"이라 여겼던 단어들이 "그들 자신의 생명과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2]. 앨리스의 이야기에서는 현실 세계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들이 넌센스 세계에서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거나 혹은 해체되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2]. 앨리스가 넌센스 세계의 언어게임 속에서 언어의 전복을 경험하면서 독자들 또한 언어의 새로운 의미를 인식하는 과정을 탐구해 볼 수 있다[2].

애너그램 (Anagram)
캐럴이 즐겨 사용한 언어 기법으로는 애너그램(Anagram)이 있다. 이것은 단어나 문장을 구성하는 글자를 재배열하여 새로운 단어나 문장을 만드는 것으로 어구전철이라고 한다. 우선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 부터가 본명의 철자를 바꾸어 만든 애너그램이다[4]. 작가의 본명인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 Charles Lutwidge Dodgson)의 'Charles Lutwidge'를 'Carolus Ludovicus (카롤루스 루도비쿠스)'라는 라틴어로 번역하고 이를 다시 역순으로 배열한 뒤 영어로 번역한 필명이 바로 'Lewis Carroll'이다[3]. 따라서 그의 본명과 필명은 서로 순서만 바뀌었을 뿐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3]. 루이스 캐럴의 창의력을 물려받아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 등의 걸출한 판타지 작품을 배출해낸 영국의 판타지 문학 속에도 애너그램을 찾아 볼 수 있다.

"톰 마볼로 리들 TOM MARVOLO RIDDLE
그리곤 그가 그 지팡이를 한 번 더 휘두르자, 그 문자들이 저절로 재배열되었다.
난 볼드모트 경이야 I AM LORD VOLDEMORT"

그리고 영화 <다빈치코드>에서는 이런 암호풀이도 나온다.
"O, DRACONIAN DEVIL!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OH, LAME SAINT! 오, 덜 떨어진 성인이여! = THE MONA RISA!" 모나리자!

펀 (Pun)
또 캐럴은 펀(Pun)이라고 부르는 말장난을 이용하여 기존의 관습적인 것들과 질서를 무기력화 시킨다. 펀은 발음이 같거나 비슷하지만 뜻이 전혀 다른 단어나 어구를 문장에 일부를 섞음으로써 수사학적 효과를 도모하는 언어유희 방법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3장에서 장미정원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지 못해 눈물을 흘리던 앨리스는 자신이 만든 눈물웅덩이(Pool of Tears)에 빠지게 되고 여기에서도 지상 세계의 언어질서와는 다른, 지하세계의 뒤죽박죽인 언어를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눈물웅덩이에 빠진 동물들을 말려준다고(dry) 생쥐가 동물들을 모아놓고 세상에서 가장 무미건조한(dry)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을 보면 "dry"란 단어를 실제 사용법과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다분히 전복적이다[2]. 즉, 지상 세계의 언어적 질서가 해체되는 과정을 펀을 이용하여 보여주고 있다.

또 앨리스가 지나가던 생쥐를 만나서 나누는 대화에서 생쥐가 “길고 슬픈 이야기”(long and sad tale)를 하겠다는 말에 앨리스는 긴 꼬리(long tail)가 왜 슬프냐고 묻는다.
결국 앨리스는 생쥐의 이야기를 꼬리에 대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생쥐의 이야기가 다섯 번 휘어졌다고 횡설수설한다. 이에 생쥐는 황당해 하며 아니라고 "not" 대답하고 또 앨리스는 그것을 매듭 "knot"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대화에서 등장하는 단어가 동음이의어여서 각기 그 뜻을 다르게 이해한 생쥐와 앨리스는 계속 서로 동문서답으로 대화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언어의 전복을 유희를 통해 보여주는 3장에는 5번 매듭진 이야기가 나온다.

더블릿(Doublet)
캐럴은 기존의 언어 유희법을 적극 활용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서 직접 언어를 이용한 게임도 창작하기도 했다. 더블릿이라는 게임은 캐럴이 발명한 말놀이로 낱말의 철자를 하나씩 바꾸어서 목표한 낱말에 도달하는 게임이다[2].

세부 규칙으로는 처음과 마지막에 생긴 두 단어는 같은 길이의 단어여야 하고, 어떤 명백한 방법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어야 하며, 같은 위치에 같은 글자가 있어서도 안된다[2]. 가령 "생쥐의 머리(head)를 꼬리(tail)로 바꿔보라"는 더블릿 문제를 풀게되면 HEAD→heal→teal→tell→ tall→TAIL! 이 된다[4]. 다음으로 캐럴 연구자 마틴 가드너가 발제한 더블릿 문제는 "원숭이(ape)를 한번 인간(man)으로 바꿔보라" 는 것이다. 수십만 년에 걸친 진화의 과정은. APE→apt→opt→oat→mat→MAN! 으로 요약할 수 있다[4].

아크로스틱(Acrostic)
마지막으로 아크로스틱이라는 방법도 등장하는데, 이것은 각 행의 첫 글자를 아래로 연결하면 특정한 어구가 되게 쓴 시나 글로 우리나라의 삼행시와 유사하다. <거울나라의 앨리스>의 맨 뒷 장에 보면 앨리스를 위해 쓴 헌시가 있다. 21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각 행의 앞 자들을 따면 'Alice Pleasance Liddell'이라는 소설의 실제 모델인 앨리스 이름이 된다.

앨리스를 위한 헌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처럼 말장난, 전승 동요나 시의 패러디, 더블릿, 어크로스틱 등 언어로 이루어진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 이런 언어게임은 언어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면서 그 언어를 현실로부터 격리시키고, 상투적인 언어 사용에서 벗어난 단어 그대로의 의미해석은 현실 세계의 진부한 언어논리에 익숙한 앨리스와 독자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준다[2]. 이렇게 캐럴은 현실세계의 의미를 무의미의 세계로 만들어 현실의 진부하고 고루한 관습들을 유머를 통해 우아한 한 방을 날린다.

참고문헌

[1] 진중권.『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휴머니스트, 2005.

[2] 이수진. "루이스 캐럴의 언어게임—앨리스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국근대영미소설학회』, 2005, 12(1), p. 97-118
[3] 이지현. "루이스 캐럴의 그림책 ‘앨리스’ 시리즈의 상상력을 중심으로 살펴본 화문대구성 연구". 『한국디자인포럼』, 2008, 20, p. 307-316
[4] 진중권. "‘부조리의 세계’로 현실 뒤집다". 『주간동아』, 2005. 406호, p. 104-106 
[5] 류우야. "붉은 여왕 가설". 2016. <http://getitall.tistory.com/entry/%EB%B6%89%EC%9D%80-%EC%97%AC%EC%99%95-%EA%B0%80%EC%84%A4-Red-Queens-Hypothesis-%EC%9D%B4%EB%9E%80>
[6] 이우. "시뮬라크르(Simulacre)와 시뮬라시옹(simulation)". 2013. < http://www.epicurus.kr/mid=Humanitas&page=8&document_srl=339025>
[7] 이남석. 『앨리스의 이상한 인문학』. 옥당, 2015.
[8] 진중권•정재승.『크로스』. 웅진지식하우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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